카츠 카이슈의 중국 인식 근대


이글루스 이사를 기념해서, 블로그명의 유래가 되기도 한 카츠 카이슈의 중국 인식에 대해 짧은 글을 써볼까 합니다.

카츠 카이슈는 다들 아시다시피, 에도 기 말부터 메이지 기 초기에 활동한 관료이자 정치가입니다.
바쿠후에서는 지금의 참모총장격인 해군총재, 육군총재를 지냈고, 메이지 신정부에서는 해군경, 추밀고문 등을 지낸 엘리트죠.

이 사람이 추밀고문관(=군주의 상담역)을 지내던 시기, 일본은 청일전쟁이라는 국운을 건 도박에 나섭니다.
여론은 청과 일전을 벌여 일본의 기개를 보여주자는 주전론으로 들끓었지만, 당시 정치가 중 거의 유일하게 전쟁에 반대한 사람이 이 카츠 카이슈였지요.



카츠의 발언을 정리한 카이슈 어록의 기사를 통해,  당시 지식층의 주류였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와 비교해보고, 미쳐 돌아가던 시대에도 이런 식견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世間では百戦百勝などと喜んで居れど、支那では何とも感じはしないのだ。そこになると、あの国はなかなかに大きなところがある。支那人は、帝王が代らうが、敵国が来り国を取らうが、殆ど馬耳東風で、はあ帝王が代つたのか、はあ日本が来て、我国を取つたのか、などいつて平気でゐる。風の吹いた程も感ぜぬ。感ぜぬも道理だ。一つの帝室が亡んで、他の帝室が代らうが、誰が来て国を取らうが、一体の社会は、依然として旧態を損して居るのだからノー。国家の一興一亡は、象の身体(からだ)を蚊(か)か虻(あぶ)が刺すくらゐにしか感じないのだ。ともあれ、日本人もあまり戦争に勝つたなどと威張つて居ると、後で大変な目にあふヨ。剣や鉄砲の戦争には勝つても、経済上の戦争に負けると、国は仕方がなくなるヨ。そして、この経済上の戦争にかけては、日本人はとても支那人には及ばないだらうと思ふと、俺は密かに心配するヨ。」

  "세간에서는 백전 백승이라고 기뻐들 하고 있지만, 지나에서는 아무 느낌도 안 들 거야. 그런 면에서 그 나라는 대륙의 기상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어. 지나 사람들은 제왕이 바뀌든 말든, 적국이 쳐들어와서 나라를 뺐든 말든 거의 마이동풍이라, 아아 제왕이 바뀌었다더라, 아아 일본이 쳐들어와서 우리 나라를 뺐었다더라 하며 신경도 쓰지 않지. 바람이 분 것 정도로도 생각하지 않는 것도 그럴 만 하다. 하나의 왕실이 망하고 다른 왕실이 들어서든 말든, 누가 와서 나라를 먹든 말든, 사회 전체는 의연하게 구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야. 국가의 흥망은 코끼리 몸뚱이에 모기나 등에가 문 정도로밖에 안 느끼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일본 사람도 지금처럼 전쟁에 이겼다고 으스대고 있으면 나중에 큰일 날지도 몰라. 칼이나 총포로 싸우는 전쟁에서는 이겨도, 경제상의 전쟁에서 지게 되면 나라를 운영할 수 없게 돼. 그리고 이 경제상의 전쟁에 있어서는, 일본 사람은 절대로 지나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나는 남몰래 걱정하고 있어."


  「日清戦争には、おれは大反対だつたよ。なぜかつて、兄弟喧嘩だもの犬も喰はないじゃないか。たとえ日本が勝つてもドーなる。支那はやはりスフインクスとして外国の奴らが分らぬに限る。支那の実力が分つたら最後、欧米からドシドシ押し掛けて来る。ツマリ欧米人が分からないうちに、日本は支那と組んで商業なり工業なり鉄道なりやるに限るよ。一体支那五億の民衆は日本にとつては最大の顧客サ。」

  "청일 전쟁은, 나는 엄청 반대했어. 왜냐면, 형제 싸움은 개도 안 먹는다고 하잖아? 가령 일본이 이겨봐야 뭘 어쩔건데? 지나는 역시 스핑크스같이 외국 놈들이 잘 모르는 게 최고야. 지나의 실력을 알아버이면 끝장인게, 유럽, 미국에서 앞다퉈 밀려들어올거야. 즉 서양 사람들이 잘 모를 때, 일본은 지나와 손을 잡고 상업이든 공업이든 철도든 시작하는 게 최고야. 말하자면 지나 5억 민중은, 일본에게 있어 최대의 고객이란 말이지."


카츠는 바쿠후 관료라는 출신성분 탓인지, 아니면 뼛속부터 탈권위와 실리로 가득 찬 에도 시타마치 출신인 탓인지, 전쟁보다는 무역과,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집중하는 발언을 거듭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만한 부분은,

'지나 사람들은 제왕이 바뀌든 말든, 적국이 쳐들어와서 나라를 뺐든 말든 거의 마이동풍이라, 아아 제왕이 바뀌었다더라, 아아 일본이 쳐들어와서 우리 나라를 뺐었다더라 하며 신경도 쓰지 않지.'

라는 부분인데요, 만세일계의 국체와 근대적 내셔널리즘을 버무려 놓은 당시 일본인들의 국가관으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외침과 그로 인한 왕조 교체를 겪어온 중국의 국가관을 이해하기 어려웠음에도, 이를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 중국인의 경제적 역량에 착목한 카츠의 발언은 선견지명이라고 볼 수 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한편 후쿠자와 유키치는 청일전쟁에 관하여 이런 발언을 늘어놓았습니다.



  「顧みて世の中を見れば堪え難いことも多いようだが、一国全体の大勢は改進進歩の一方で、次第々々に上進して、数年の後その形に顕れたるは、日清戦争など官民一致の勝利、愉快とも難有いとも言いようがない。命あればこそコンナことを見聞するのだ、前に死んだ同志の朋友が不幸だ、アア見せてやりたいと、毎度私は泣きました。」
 
  세상을 돌아보면 참기 어려운 일들이 많은 것 같으나, 한 나라 전체의 대세는 개혁 진보로 나아갈 뿐이며, 차례차례 앞으로 나아가 몇년 뒤 나타나는 모습은 청일 전쟁과 같은 관민 일치의 승리로, 유쾌하다고도 감사하다고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목숨이 붙어있기에 이러한 광경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죽어간 뜻을 같이하는 친우들이 불쌍하다. 아아 보여주고 싶었다고 나는 매번 울었습니다.


  「吾輩の目的は唯戦勝に在るのみ、戦争に勝利を得て、我国権を伸ばし、吾々同胞の日本国人が世界に対して肩身を広くするの愉快さえあれば、内は如何なる不平不条理あるも之を論ずる遑あらず。」

  소생의 목적은 그저 전승에 있을 뿐.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 우리 국권을 넓히고, 우리 동포인 일본국 사람들이 세계에 대하여 당당하게 나서는 유쾌함만 있다면, 안으로는 어떠한 불평, 부조리가 있더라도 이를 논할 틈이 없다. 


덧글

  • ㅇㄹ 2014/11/28 23:43 # 삭제 답글

    잘 보고 갑니다!
  • 카츠 2014/11/29 12:22 #

    부족한 글인데 감사합니다
  • 대공 2014/11/28 23:52 # 답글

    청일전쟁 끝나고 러시아가 남하한거 보면 참...
  • 카츠 2014/11/29 12:23 #

    아편전쟁이야 영국이 상대였으니 그러려니 해도, 근대화 후발주자인 일본에게 진건 호구인증으로밖에 안 보였을것 같습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4/11/29 07:59 # 삭제 답글

    카츠 카이슈란 양반이 선견지명이 있네요.

    저 때 중국과 일본이 경제적으로 손 잡고 서로 발전했으면 지금쯤 사이는 나빠도 원수사이는 안 됬겠죠.
  • 카츠 2014/11/29 12:38 #

    일본조차 근대화되기 이전인 1863년에, 쵸슈의 카츠라 코고로, 츠시마의 시마 토모노죠를 상대로 주장한 조선론이 걸작이죠.

    "당금의 아시아 대륙에는 유럽인들에게 대항할 자가 없다. 이는 모두 규모가 협소하고 원대한 책략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함선을 내서 널리 아시아 각국의 주인들을 설득하여 합종 연횡하고, 함께 해군을 키워 서로 변통하고 학술을 연구하지 않으면, 그들의 유린에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먼저 이웃 나라 조선부터 설득하고, 그 이후에 지나를 설득할 것이다."
  • 진보만세 2014/11/29 10:05 # 답글

    왠지 미야자키 도텐의 '일중 화평'에 의한 대아시아 번영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군요. 좋은 자료 번역글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블로그 이사 개점 축하 올립니다..화이팅!! ^^
  • 카츠 2014/11/29 13:21 #

    축하 감사드립니다^^

    확실히 미야자키 도텐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다만 카츠 같은 경우는 혁명보다는 기존 군주를 설득해서 동참시키려고 하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면이 있었죠^^
  • rumic71 2014/11/29 16:03 # 답글

    후쿠자와는 알면 알수록 중2병이로군요....
  • 카츠 2014/11/29 16:33 #

    뭐 저런 게 주루였던 시대라, 후쿠자와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당대의 사회적 위상을 생각하면 좀 아쉽긴 하죠.
  • 라라 2014/11/29 20:25 # 답글

    중일전쟁으로 중국을 일본이 점령해도 저런 식으로 보면 그랬나 보다 정도군요...

    과연 대단한 식견이네요.

    19세기 사람인데 21세기 왠만한 사람보다 더 나은 듯
  • 카츠 2014/11/29 22:27 #

    근데 저 부분은 카츠가 왕조 교체를 겪어보지 않은 일본인이기에 저렇게 말한 건가 싶기도 합니다.
    사실 한반도만 해도 고려에서 조선, 일본으로 지배자가 바뀌었지만, 그것만으로 대다수 민중의 생활이 극적으로 변한 건 아니었으니까요ㅎㅎ
    다만, 일본의 후대 경제인들도 중국 시장에 주목한게 1960년대 이후임을 생각하면, 장기적 안목은 군계일학이었던 것 같아 소개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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