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창야화 제1편 : 파피니아누스, 죄안을 기초하지 않다 근대

장대하게 시작한 무로마치 바쿠후 연재글이 자료수집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사이에, 땜빵용으로 번역글을 한편 소개해볼까 합니다. 바로 '법창야화(法窓夜話)' 라는, 메이지-다이쇼 연간의 일종의 법률 예화집입니다.

저자인 호즈미 노부시게(穂積陳重)는, 일본 최초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이자, 민법전의 아버지로도 유명한 사람인데요, 이런 당대의 엘리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과 교양을 쏟아부어 '법이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에 답하기 위해 만든 책입니다. 자연히 동서양의 고전부터 당시의 최신 이슈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어서, 번역하는데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한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물론 그만큼 재미는 보장드립니다^^



1. 파피니아누스, 죄안을 기초하지 않다.

선비가 가장 중히 여겨야 것은 절의이다. 일어설 때도 이에 따르며, 움직일 때도 이에 기초하며, 나아갈 때도 이를 지향한다. 절의를 높이기를 물과 앞에서도 이를 주저하지 아니하며, 절의가 없으면 왕후의 위엄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의돈(猗頓) 부로도 유혹하지 못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선비라 칭할 있을 것이다. 학자는 실로 선비 중의 선비이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진리를 논하여 일세의 지식을 이끄는 것이 학자이다. 학리의 심오함을 추구하여 천하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학자이다. 당당한 정론으로 정치가에게 시정의 방침을 보이고, 의연히 이를 의논하여 만중에게 처세의 대도를 가르침도 모두 학자의 임무가 아닌가. 스스로 학자가 되려 하는 자는, 학리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내던질 각오도 하지 아니하고 어찌 임무를 지킬 있을 것인가. 학자의 안중에는 학리는 있으나 이해는 없다. 구구한 지위, 편편한 재산은 학리 앞에 비하면 무엇인가. 학리가 높이는 것은 절의를 높이는 것이다.

로마의 카리칼라(Caracalla) 황제가 이유 없이 동생 게타(Geta) 죽이고, 즉시 당시의 법률가인 파피니아누스(Papinianus) 불러 명하여 이르되

짐이 지금 게타에게 죽음을 내렸노라. 그대는 이유를 찾아 죄안을 기초하도록 하라.”

 
하니, 안색과 음성이 심히 맹렬하여 번개가 내려치는 같고 바람과 구름이 몰려드는 같았다. 이를 들은 파피니아누스는 엄연히 의관을 바르게 하고 아뢰기를

이미 무고한 자를 죽이고도 만족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죄악을 더하고자 하시는도다. 이는 실로 이의 모살을 하는 것이옵니다. 패륜을 변호하는 것은 이를 범하는 보다 어려우니, 폐하께서 만일 신의 붓으로 하여금 대악으로 더럽히게 하시고자 하시오면, 차라리 신에게 죽음을 내려 주시옵소서.”

대답하고는, 태연자약하였다. 조정에 가득한 백관들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땀을 틈도 없이 황제가 대노하여 벼락을 쏟아내었다.

닥쳐라! 썩은 선비놈아, 짐이 네놈의 소원을 들어주겠노라!”

폭군의 명령은 추상과도 같았다. 하얀 칼날을 한번 휘두르니, 절세의 선비가 목과 몸을 달리하였다.

파피니아누스는 실로 로마 법률가의 거벽이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의인용법에서도, 파피니아누스, 파울루스, 우르피아누스, 가이우스, 모데스티누스의 오대 법률가의 학설은 법률의 효력이 있다 정하여,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다수설에 의거하여 이를 결정하였고, 의심스러운 것이 있거나 학설이 동수로 갈라진 경우에는 파피니아누스의 설에 따르도록 것을 보건대, 당시의 법조 가운데 그가 점하는 탁월한 지위를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존숭하는 이유는, 오로지 학식에서만은 아니다. 의연한 절의가 있을 처음으로 나의 존경할 만한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학문이 능한 자는 얼마든지 구할 있을 것이나 그와 함께 높은 절개까지 가진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다. 서양에 정의의 편에 서서 두려움이 없고, 학리를 위해서라면 목이 달아나는 조차 피하지 아니하는 파피니아누스가 있고, 동양에는 연왕 성조(成祖) 앞에 붓을 내던지고죽으면 죽으리오나, 조서는 쓰지 못하겠소라고 절규한 명조의 유학자 방효유(方孝孺) 있다. 나의 뜻을 굳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는 퀴자(Jacques Cujas) 같이법률의 수호신’, ‘만세의 법률 교사라는 찬사를 법률가 앞에 바치고 싶다. 기번(Gibbon)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That it was easier to commit than to justify a parricide” was the glorious reply of Papinian, who did not hesitate between the loss of life and that of honour. Such intrepid virtue, which had escaped pure and unsullied from the intrigues of courts, the habits of business, and the arts of his profession, reflects more lustre on the memory of Papinian, than all his great employment, his numerous writings, and the superior reputation as a lawyer, which he has preserved through every age of the Roman jurisprudence.(Gibbon's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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